매월 세번째 금요일이면 사방에 흩어져있던 책 읽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다. 이 날만큼은 일주일 간 격무로 지친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도, 술 한 잔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마음도 접고 북카페 북티크로 향한다. 불타는 금요일, 50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글을 나눈다. 나이, 직업, 성별 등 세대와 지위를 막론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책'이다.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각자 써온 서평을 낭독하고 나누는 모임, '서평독토'. 이번 달은 <모멸감>과 <단속사회> 두 권을 읽고 토론했다.
모임 시작은 저녁 7시 30분. 미리 와서 책을 읽는 회원들도 있고, 어떤 회원들은 서로 근황을 나누며 얼굴에 미소가 가실 줄 모른다. 분위기를 살피며 조용히 시작을 기다리는 분들은 신규 회원인 듯하다. 각양각색의 모습도 토론이 시작되면 하나가 된다. 책이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책으로 세상에 접속하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독서가들과 공감하며 지혜를 공유하는 자리다. 10명 이내로 그룹을 지어 독서토론 리더를 중심으로 다양한 생각을 나누며 교류한다.

"제 평점은 2.5점인데요. 저자가 근거로 제시하는 사례들이 너무 편향적이어서 공감이 많이 안가더라구요. 사실 '공동체'라는 대안도 어느 책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대안이라서 저는 좀 식상했는데 다른 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4점을 주고 싶네요. 사회학자들이 공동체를 강조하는 건 그만큼 중요해서가 아닐까요? 가장 기본적인 대안인데도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목소리를 높이는 거 같아요. 식상하게 느껴질만큼 많이 들어왔는데도 잘 안되고 있잖아요. <모멸감>은 공동체 중에서도 '평가 없는 공동체'라는 구체적 방향을 줘서 저는 좋았습니다."
서평독토 회원들은 상반된 입장이더라도 배격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관철하는 게 아니라 다른 생각을 듣고 사고를 확장한다는 생각으로 토론에 임한다. 독서토론은 결론을 내리는 자리가 아니다. 책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며 깊이 생각하는 장이다. 엄기호가 말했던 것처럼, 사회학자는 사회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구성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 해결 방안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우리가 <모멸감>과 <단속사회>를 읽고 토론하고 서평을 공유하는 것은 그만큼 의미있는 일이다.
서평독토에서는 초보 독서가, 독서토론이 처음인 사람을 환영한다. 그룹마다 리더 한 명씩 배치하여 초보자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물론 개인사정상 뒤늦게 장소에 도착한 사람들도 소외되지 않는다. 총괄하는 운영자가 바로 자리를 안내하고 토론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50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통솔하려면 치밀한 계획과 민첩성이 요구된다. 한 달에 한 번, 서평독토를 진행하기 위해 운영자와 독서토론 리더들은 한 달 동안 준비한다. 서평독토에 초보자들이 많고 매 회마다 신규회원이 늘어나는 것도 이들의 노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약 한 시간의 독서토론을 마무리하면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회원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각자 써온 서평을 회원수만큼 출력해와서 큰 테이블에 놓아두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서평을 나누어 가진다. 일명 '서평 뷔페'다. 독서토론을 통해 소규모 인원과 말로 생각을 공유했다면, 서평 뷔페를 통해 50가지의 다양한 생각을 글로 공유한다. 일사분란한 서평 뷔페가 끝나면 다시 자리를 바꾸고 서평 낭독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 내 글을 낭독할 기회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처음에는 부족한 글이라면서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서평독토는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생각과 글을 나누는 소통과 화합의 장이다. 신입 회원들의 부끄러움도 이내 뿌듯함으로 바뀐다.
서평이 낭독될 때마다 회원들의 힘찬 박수가 이어진다. 책을 읽고 A4 한 매에 자기 생각을 글로 꾹꾹 눌러 담았다는 데에 대한 칭찬과 격려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리더를 중심으로 회원들과 함께 각 서평의 좋았던 점을 나눈다. 서평 쓴 사람은 칭찬에 용기와 희망을 얻고 읽은 사람은 생각을 넓히고 글보는 안목을 키운다. 인기 서평을 뽑아서 소정의 선물을 하고 더욱 큰 박수를 보낸다. 회원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은 서평에게 주는 또 하나의 칭찬이다. 인기 서평의 기준은 잘 쓴 글이 아니라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이다. 공감을 이끌어내는 서평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우수 서평이 아니라 인기 서평이라고 한 것도 '평가'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겠다는 서평독토의 의지인 셈이다.
회원들은 서평뷔페를 통해 토론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마저 나눈다. 사람들은 서평을 딱딱한 글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서평에도 서평가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같은 책을 읽어도 저마다의 삶과 사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모멸감>과 <단속사회>를 읽은 서평독토의 젊은 세대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여전히 힘든 삶과 직장에 대한 고민을 서평에 눌러 담았고, 중장년 세대는 자신의 삶보다는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고뇌와 사유를 눌러 담아냈다. 살아온 궤가 다르기에 같은 책으로도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아닐까. 이들의 서평을 읽으며 서평 역시 사람의 품이 느껴지는 따스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평 낭독을 마치면 모든 회원이 둘로 나뉘어 마주보고 앉는다. 신규 회원들에게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보내고 전체 소감을 나눈다.
"일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올까 말까 고민했는데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왔다.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이 모임에 오기 위해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서평을 처음 써봐서 낭독하는 게 부끄러웠는데 인기 서평에 뽑혀서 정말 기쁘고 설렜다."
"엄기호는 우리 사회에 곁이 없다고 말하지만 서평독토야말로 곁이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감동과 의미있는 소감들을 들은 후에는 모두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서평독토 회원들은 책으로 삶을 나누고 생각에 공감하고 사회를 바라보며 금요일을 불태웠다. 참가비 만 원으로 사람들과 차와 빵을 함께 먹으며 책과 글로 우리 이야기를 나누는 서평독토야말로 진정한 '만 원의 행복'이 아닐까?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회원들의 얼굴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충만함이 느껴진다. 나는 이들의 충만함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씨앗이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김찬호가 <모멸감>에서 말한 '평가없는 공동체' '환대의 공동체'가 될 작은 씨앗 말이다.
글 / 권선영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