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가정법의 감옥에서 출소하는 날
2020년 1월 1일.
수감번호 791128 김영아.
머그샷 찰칵!
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 당신을 백쓰 35기 감옥에서 형량 100일을 선고합니다. 쾅쾅쾅.
그렇게 나는 내 발로, 내 손으로, 내 돈까지 내가며 백쓰 35기 라는 가정법의 감옥에 들어왔다.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나만의 국가를 위한 사상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살인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도저히 내가 잘 수 있는 방이 없고, 나 하나 거둬줄 이 없어 떠돌던 방랑자가 교도소라도 가면 그래도 삼시세끼 밥이라도 주니 그냥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라도 들어가야겠다! 라고 결심한 것과 같은 맘인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쓰고 싶다는 욕구는 꿈틀댔으나 어찌 쓰는 건지 방법은 잘 모르겠고, 매일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하기에 내 발로 걸어들어왔다.
내가 이 감옥에 부여한 가정법은..
"백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쓰면 글 쓰는 습관이 정착될 것이다"
"글을 쭉 쓰다보면 나만의 글 패턴이 나오고, 내가 가장 잘 풀어내는 주제가 나올 것이다"
"백쓰를 완료하면 나는 준 작가만큼 성장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쇼생크 탈출처럼 중간에 바닥을 파고 뛰쳐 도망갈 수도 있을것이다" 등등
무궁무진했다.
가정법의 감옥이 아니면 글쓸 동력이 나지 않을 것 같았기에 나에게 천국같은 지옥이었던 감옥이었다. 오늘이 감옥에서 출소하는 날이다.
야호! 신날 줄 알았다. 해방감을 맛볼 줄 알았다. 그리고 다 끝나면 작가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백쓰 끝나는 날 백일기념 하얀 백설기를 먹으며 축하해야지 라고 계획도 했다. 가정법의 감옥은 내 예상을 완전 뒤엎었다. 허전하다. 눈물이 핑돈다. 또 감옥에 들어가고 싶다. 난 아직 작가가 되려면 멀었다. 그리고 축하의 상징인 하얀 백설기 대신 출소의 상징인 하얀 두부를 먹고 싶다. 백쓰 감옥에서는 벗어나지만, 난 또 새로운 감옥에 들어가려 한다. 일기쓰기, 블로그 글쓰기, 아티스트 웨이, 창조 조력자들과의 다채로운 연대 라는 감옥에 나를 집어넣어야겠다. 아무래도 감옥에서 먹는 콩밥에 길들여졌나보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날 박완서 작가님의 글이 떠올라, 바꿔쓰기를 해보며 마무리지으려 한다.
"휴전이 되고 집에서 결혼을 재촉했다. 나는 선을 보고 조건도 보고 마땅한 남자를 만나 약혼을 하고 청첩장을 찍었다. 마치 학교를 졸업하고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하는 것처럼 나에게 그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 남자에게는 청첩장을 건네면서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나서 별안간 격렬하게 흐느껴 울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그 남자네 집/박완서 -
백쓰를 마치는 오늘 이별이 슬프고, 나의 눈물에는 거짓도 없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있고 싶어 우는 것이 아니듯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 끝! -
<전**>
100일 글쓰기를 마치며
일찌감치 책상에 앉았다. 백쓰 프로젝트의 마지막 글을 쓰기 위해서다. 늘 마감 시간에 쫓겨서 쓰다 보니 할 말을 다 못한 채 카페에 글을 올렸다. 그렇다고 주말이라고 달랐던 것도 아니다. 쉬어야 한다는 강한 머릿속 명령으로 미루다 미루다 자정이 다가와서야 올리기 일쑤였다.
지난해 12월 26일 워밍업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정확히 107일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숱한 장애물들을 넘어왔다. 사회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저녁 술자리(자고 일어나면 술이 원수라며 화살을 술로 돌렸었다.), 툭하면 찾아오는 슬럼프(정말이지 이젠 넘었다고 생각하고 한숨 돌리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글쓰기 소재를 찾아서 집 밖을 나서야 하는 괴로움(돌이켜보니 부지런한 삶을 위한 거름이 되었지만)들. 머릿속 한 곳을 덩그러니 차지하고 앉아서 쉴만하면 방망이를 휘두르는 압박감들. 가족 외식을 위해 ‘오늘 뭐 먹지’라는 즐거운 고민은 ‘오늘은 또 뭘 쓰지?’라는 한숨 썩인 질문들로 바뀌었다.
100일간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은 혼자만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24명의 결사대가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아니 한송희님의 예쁜 천사, 평강공주도 한 몫 단단히 했으니 25명이 맞겠다. 평강공주의 출생은 글쓰기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결말을 알리는 폭죽이었다. 오랜 기간을 함께한 친구처럼, 가족처럼 밀어주고 당겨주었기에 기나긴 여정의 종착역에 함께 설 수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글쓰기 프로젝트는 고통스러웠던 기억만을 남겨주진 않았다. 기말고사를 막 끝내고 마시는 치맥 한잔 같은 짜릿함을 매일 선사했다. 마지못해 마시는 한약처럼 쓰기만 했던 글쓰기는 점점 글쓰기 내공을 길러주는 든든한 기초체력이 되었다. 또 반복되는 글쓰기 일상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분량을 채울 수도 있겠다는 강한 정신력을 길러주었다.
단순한 일상을 바꿔놓았다. 책을 읽는 즐거움에서 글을 쓰는 즐거움으로. 정적인 두뇌를 창의적인 동적 두뇌로 변하게 했다. 어쩌면 몇 곱절의 기쁨을 불과 100일간의 짧은 노력으로 얻은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글을 쓰고 난 뒤의 후련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감의 순간이었다.
이젠 더 나은 도전을 준비하고 싶다. 스멀스멀 글쓰기 본능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다시 시작이다. 200일 쓰기, 365일 쓰기? 아니다. 평생 쓰기다. 언젠가는 당당히 외치고 싶다. ‘나 이래 봬도 매일 글 쓰는 사람이야’라고
오늘 저녁은 자축해야겠다. (함께한 전우들과 같이 라면 얼마나 좋을까) 시원한 치맥을 치켜세우며, ‘또 다른 도전을 위하여!’, ‘전우들의 건강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장하다 전정환’. 끝.
<문**>
<멈추지만 말자. 언젠가 이루어 질 것이다.(Let’s not stop! It will be someday!)>
오늘 아침 출근하니, 옆 팀의 이쁜 직원이 하얀 설기 떡을 주었다. 집에 있던 거 가지고 왔다며. 그걸 보니 어제 문득 ‘내일 사무실에 떡이라도 돌릴까... 근데 뭐라 말하나... 에이, 그냥 접자.’ 잠시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혼잣말로 “맞다.. 나 오늘 백일 떡 사야 되는데...”라고 중얼대니 대뜸 우리 직원 하는 말 “왜요? 팀장님 오늘 애인이랑 100일이예요? 호호.” “그래! 오늘 우리 새 남친이랑 100일이다. 기념해야지.” 하며 대답하자, 옆 팀 남자 직원은 눈을 반짝이며 한 술 더 떠 “누군데요? 어떤 사람이에요?”한다. 이것들이 잘 살고 있는 남의 가정에 폭탄을 투척하려 하나... 화기애애한 100일 아침이다.
그렇다 오늘은 100일 글쓰기의 100일, 마지막 날이다. 지난 100일을 돌아보니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또 그리 아쉽지도 않다. 뭔가 아쉬워야 후일을 도모할 텐데.. 마음이 그냥 평온하다. 너무 평온해서 좀 무섭다.
일단 나는 이 글의 끝에 <원고지 00.0장>이란 글을 쓰고 ‘백쓰 35기’ 카페와 내 개인 블로그에 올리면 당초 계획이던 100일 글쓰기 완주를 달성한다. 물론 내가 쓴 글을 보면 아주 가끔은 나름 맘에 차고 대부분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부끄럽다. 그냥 시간에 쫓기며 숙제하듯 어지러이 쓴 글들이니 당연하다 여겨보고 싶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간이 넉넉히 있었다고 읽어 줄 만한 글이 나왔을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내 글이 읽기 거북한 건 시간 부족으로 인한 거친글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글쓴이가 다방면의 부족함을 안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나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들여다보기에 이미 답은 알고 있다.
먼저 읽고 그 후에 쓰기라 했다. 내가 글쓰기를 해보겠다고 생각한 게, 본격적으로 책읽기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후였다. 겨우 1년 책 좀 읽고 섣불리 글쓰기를 시작했나? 하는 성급함에 후회가 밀려온다. 아직 성글지 않은 열매를 따서 요리를 해보고자 했으니 말이다. 코치님이 다른 동기님들이 쓴 글을 읽어보라고 팁을 주셨지만 내 글 써서 올리기도 급급하여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사실은 가끔씩 읽어보는 다른 동기님들의 글들은 너무 좋은데, 그에 반해 조악하고 깊이가 없는 내 글을 보니 자괴감이 들어 부러 읽기를 무시하곤 했다. 이런 미숙함이라니. 그런 과정을 거치고 넘기고 해야 하는데 나의 그릇이 아직은 그 정도다. 그릇이란 것이 고무풍선처럼 늘려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작은 그릇을 깨고 좀 더 큰 새 그릇을 빚든지 사든지 해야 하는 것인데 아직 이 그릇을 깨지 못하고 있다.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 반드시 파기하고 새로 장만해야 한다. 1인 1그릇.
생각보다 100일은 긴듯하지만 짧았다. 영겁의 우주에서 보면 한낱 점도 되지 않은 내 기나긴 인생의 시간에 먼지만도 못한 찰라인 100일. 그냥 너무 후딱 지나가서 허무하기까지 한 그 100일. 그러나 너무도 감사하다. 이 먼지 같은 100일을 계기로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책을 읽고 TV 드라마를 보듯 일상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있었는데, 그건 어제 말한 100일 그 이후, 2막의 시작 때문이다. 지금 100일 글쓰기 하듯 2막으로 1년을 쓰는 것은 좀 부담이다. 그런데 오늘 코치님의 머리글에서 반짝 힌트와 위안을 얻었다. 사진일기, 칼럼 필사, 하루 한 문장 노트에 옮겨 적기. 하루 한 문장 단상 적기. 역시 우리 코치님! 어쩜 찜찜함과 불안감으로 시작할 뻔한 내 2막의 시작과 1막의 마무리를 미리알고 홀가분하게 해주시는지.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내 사무실 책상 위 모니터 하단에 자필로 써서 붙여 논 글귀인데
멈추지만 말자. 언젠가 이루어 질 거다. Let’s not stop! It will be someday!
그러니, 오늘로 100일 글쓰기는 끝나지만 새로운 100일+가 있으니 아쉬움은 그냥 잠시 집어넣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내일도 모레도 멈추지 않고 글을 쓰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그 무엇인가 이루어 질 것이다.
<이**>
2020.04.09 수고 많으셨습니다
100일, 곰이 사람이 되기까지 인내야하는 시간
아기가 태어나고 처음 탄생과 삶을 축하받는 기간
완성된 숫자이자 무언가 한 고비를 넘겼다고 보여지던 그 의미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우리는, 매일 쉬지 않고 글을 쓰며 내면을 다졌습니다. 칼바람이 불던 신년의 첫 날부터 벚꽃이 다 진 4월의 아흐레까지 빠지지 않고 하루 하루 글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 길고 긴 변화의 시간을 보내며 매일 벽돌 한 장을 쌓는 기분으로 글을 써 내려 간 나와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100일의 시간이 모두에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식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택시에서 급하게 핸드폰으로 글을 쓴 적도, 11시 넘어서까지 퇴근을 못해 회사 컴퓨터로 글을 썼던 적도 있습니다. 친구와의 약속을 마치고 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서 글을 썼던 기억도 꽤나 있어서 다시 읽어보면 저만 아는 술냄새가 배어나오는 글들도 있습니다. 아마 동료들 중에서는 저보다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하고 더 어려우셨을 분들도 계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바쁜 일상 생활과 생계를 위한 업을 수행하며 그 속에서도 짧은 글이나마 써서 올리며 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분명히 박수를 받아 마땅할 대단한 일입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크고 굵게 한 방을 쳐내는 것보다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체감합니다. 작게라도 끊이지 않고 본인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은 자신의 게으름과 타성을 뛰어넘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의 큰 벽을 넘은 기분입니다. 글과 문장이란 매일 마주하고 써내려가는 아주 익숙한 일상이지만 그 일상을 조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흰 창에 커서를 두고 몇 시간 동안 고민을 했었던 적도 있고, 책상에 앉아서 쓸 거리가 없나 고민을 하면서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몇 가지 아이디어를 찾아 그걸로 글을 썼던 적도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이 글쓰기의 한 부분이겠죠. 평생 생각만으로만 하던,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부끄러운 감정을 내놓았던 날도 있습니다. 어쨌건 전부 나의 글이 되었고 동시에 나의 부분이 되었습니다.
100일의 끝에 선다면 굉장한 성취감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상대로 정말 행복합니다. 해냈다는 뿌듯함과 글쓰기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행복과 성취의 감정은 회사 일을 하면서는 느끼기 어려웠는데, 나의 일상 속에서 작은 글쓰기는 단비가 되어줬던 것 같습니다. 성취감 못지않게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도 큽니다. 100개(사실 저는 96개를 썼습니다..)의 글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조금 더 문장과 표현을 다듬어서 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매일 나의 글을 쓰고 이야기를 조잘거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이제는 없다는 생각에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나의 글을 보고 동료들의 글을 읽고, 그들의 일상을 엿보며 상상할 수 있던 재미난 시간들도 이제는 더 없겠죠.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매일 밤 퇴근하고 책상에 앉아 나의 깊은 속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한 문장 한 문장으로 옮기는 시간은 고통스런 행복이었습니다. 출퇴근 길에 글감이 떠오르면 다급하게 메모에 적던 그 기억도 순간을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어줬으니 행복한 기억입니다. 그렇게 2020년의 겨울과 봄의 생각을 꼬박 기록하며 살았습니다.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100일이 끝났습니다. 저도, 함께 긴 시간을 달려온 동료분들도, 매일 글을 봐주시고 챙겨주시던 코치님도, 정말로,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권**>
“잘 했어~ 그래 잘 했던 거야"
“엄마! 오늘 100일째 날이네. 엄마 뭐 사 줄까?^^”
매일 나의 글쓰기를 응원해 준 유일한 지지자, 작은 아들이 오늘 100일째라며 알뜰살뜰 모은 용돈으로 내가 갖고 싶은 걸 하나 사준다며 말을 건네 왔다. 100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마감시간을 지키려 애썼던 나의 노고에 대한 상을 준다고 하는 것 같아서 약간 설레었다. 그리고 작은 아들의 그 마음에 감동했고 고마웠다.
그동안 어찌 100일까지 견디어 왔는지 모르겠다. 때론 하루 종일 글감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어찌 글로 풀어야 할지 몰라 지우고 지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짧은 단상만을 남긴 적도 꽤 많았다. 하필이면 아이들 방학이었고 하필이면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있게 되었고 하필이면 계획했던 모든 일이 무산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더더욱 집중해서 글을 쓴다는 게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이었다. 시간에 쫓기듯 썼고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걸 지레 포기해 버리고 글을 썼던 시간들도 꽤 되었다. 처음에는 자발적이었지만 점점 의무감, 강박감에 글쓰기를 대했지만 그래도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한다는 나의 성격이 한 몫 한 듯도 싶다.
솔직히 100일을 쓰고 나면 조금은 글쓰기가 수월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글쓰기에 임하는 나의 태도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은 게 당연한 결과라 약간은 아쉽고 반성하게 된다. 글을 쓴다는 건...나에게는 아직도 힘겨운 과정이다. 생각의 확장이 잘 되질 않는다. 뭐가 잘 못 된 건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항상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늘 100일째 날인데도 기쁨보다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더욱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19처럼 훅 찾아 왔다가 어느 순간 하향 곡선을 타게 되었고 그리고 쭉 정체기에, 나태함까지 찾아와서 이어온 느낌도 든다. 상황이, 환경이 어떠했던지 간에 끝은 왔고 이탈하지 않고 잘 왔다는 것에 우선은 감사하고 나에게 칭찬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100일이 아니라 1000일의 글쓰기 과정이 있어야 쉽게 첫 문장을 시작해서 수월하게 글쓰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시간이 겹겹이 쌓이면 아마도 글쓰기가 재미있는 일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이 끝이지만 또다른 오늘이 있기에 쭉 써 볼 것을 다짐해 보며 글을 마쳐야 겠다.
그동안 함께 해온 동기분들과 코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글쓰기’ 쭉 이어가실 응원합니다. 끝.
<옥**>
왔노라, 썼노라, 이겼노라!
드디어 그 날이 왔다.
백글쓰 대장정을 마무리 하는 날이다.
무슨 말이 필요 있으랴.
방점을 찍은 그 자체로 감개 무량하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멋진 퇴사 피날레를 하고자 백글쓰를 시작했다.
늘 그렇듯 연초의 가열찬 의지로 힘차게 달려 나갔다. 온몸에서 글을 쓰고자 하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글 쓰고 싶은 소재들이 많아 근질거리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 시간이 지나자, 소재도 떨어지고, 의지도 꺾이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 억지로 쓰는 경우도 꽤 있었다. 지각하는 경우도 두어번 있었다. 가끔 불안 증상이 나타날 때면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 것도 할수 없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100일간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다 코치님과 함께 걸어온 백글쓰 도반님들 덕분이다. 자발적 의지만으로는 해낼 수 없었을 텐데, 역시 혼자는 외롭지만, 뭉치면 든든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글을 쓰면서 아쉬웠던 점은 역시나 내공부족이다. 글감이 떨어지자 덩달아 내 의지도 꺾이고 말았다.메모와 소재 찾기의 중요성은 물론이요, 끊임없이 머리속에 새로운 자양분을 넣어줘야겠구나 느낀 적이 한 두번 아니다. 인생 선배님들의 해학과 풍자, 달관 등이 적절히 녹아있는 숙성 와인 같은 글들을 읽으며 많이 느끼고, 또 많이 배웠다. 비로소 다독, 다작, 다상량에서 다독을 가장 먼저 언급한 이유를 알겠다.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많이 읽고, 많이 들어야지.
아쉬웠던 점 또 한 가지는 건강이다. 많이 좋아지긴 했으나, 몸과 마음의 건강이 완전치 않다. 건강을 잃으니 글쓰기는 물론 만사가 무기력해졌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건강을 되찾아야겠다.
내 인생의 모토는 즐거움이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지덕체를 고루 함양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즐겁게 살고 싶어서다. 엎어진 김에 충분히 쉬어가며 심신의 건강을 찾고 난 후 백글쓰에 복귀하려 한다. 다시 한 번 백글쓰를 해낸다면 천글쓰, 만글쓰도 못할게 뭐가 있겠는가? 잠시 쉬겠지만, 매일매일 글을 쓰며 하루를 풍성하게 마무리하는 인생을 꿈꾼다.
첫 술밥에 배부를 순 없다. 하지만 처음 시도한 백글쓰는 너무도 배부른 한 술이었다. 오늘 밤 완주의 행복을 오롯이 누려야겠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기약해야지. 다들 수고 많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