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감성 글쓰기> 모임을 기획한 이유


예술, 교육이 아니라 환경입니다.

 

부모님께 받은 최고의 유산이 있다. 바로 그림들에 둘러싸여 자랐던 유년기다. 지독한 예술 애호가인 부모님 덕분에 예술은 일상이 됐고 환경이 됐다. 그림 속에서 놀았고 자랐고 키가 컸다. 청전 이상범 8폭 병풍 안에서 사계절의 축복과 자연의 신비를 배웠다. 박수근 아기 업은 소녀 드로잉 속에서 우리 근대사의 슬픔과 끈기를 깨달았고. 한 달이 멀다하고 바꿔 걸리는 수많은 그림들 속에서 느끼고 상상하고 성장했다. 그리고 어느새 예술 향유자가 되어있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갤러리를 운영했다. 실제 갤러리를 해보니 예술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지 깨달았다. 예술은 그들만의 리그였다. 사람들은 예술, 특히 그림은 어렵고 잘 몰라요. 어색해했다. 예술, 어렵지 않아요.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보이는 만큼 느끼면 되는 거예요. 알리고 싶어서 수많은 기획을 하고 강좌를 열었다. 서초구 반포도서관에서 문화 예술 촉매자 교육을 6년째 주관하고 있다. 문화가 있는 수요일마다 사람들을 모아 미술관 탐방을 진행했다. 갤러리에서 그림으로 글쓰기 수업도 수차례 열었다. 사람들은 처음에 낯설어하던 예술과 점차 친해졌다. 그리고 즐기기 시작했다.

 

예술은 좋은 관계, 좋은 소통의 훌륭한 매개가 된다. 그러면서 예술과 더불어 인생을 향유하게 된다.

 

2016년 운명처럼 시작하게 된 보육원에 그림을 기증하는 <사랑의 갤러리> 봉사. 몸담고 있는 한국문화복지협의회에서 뜻을 모아 시작한 일이 더없이 소중한 가치가 됐다. 예술을 아이들에게 환경으로 만들어주자는 생각의 실천. 지난 몇 년간 전국 50여 군데 보육원을 돌아다녔고 그림들을 걸어주었다. 아이들이 그림 앞에서 와! 너무 예뻐요, 아름다워요. 감탄하며 표현 할 때 그 순간은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다. 바로 그 때 예술 감수성이 싹트고 쌓이기 때문이다. 그 감수성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따뜻하고 강력한 에너지가 된다.

 

예술을 접하는 경험은 결국 내 안의 감성을 깨워 지성으로 성장시키는 일. 그림 한 점이 별건가 싶지만, 단언컨대 특별한 것이다. 그림을 들여다 볼 때 우리는 잠시 멈춘다, 살핀다, 집중한다. 그리고 느낀다, 생각한다, 상상한다. 그 모든 과정들은 직관적이고 구체적으로 감각되며 세상을 인식하는 탁월한 방법이 된다.

 

지난 성장 과정, 현장의 이야기들을 한권의 책으로 출간한 이후, 예술에 대한 더욱 폭넓은 경험을 쌓았고 계속 글로 썼다.

 

그림으로 계속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비대면 시대 불안한 이 시절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예술이라고. 좁은 방 안에서도 세상을 보는 시야의 확장, 사람에 대한 시선의 깊이가 절실하다고. 예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야말로 지금, 간절히, 예술이 필요하다고.

 

지난 2년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을 다니며 예술이 일상에 내려앉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오래도록 참 좋아하는 공동체인 숭례문학당에 길이 있었다. 읽고 쓰고 나누며 삶을 영위해가는 사람들,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며 삶을 향유해가는 사람들, 이제 우리 아이들 차례다. 예술이 환경이 되면 체질이 변화한다. 작은 걸 크게 보고 사소한 걸 지나치지 않는다. 공감력이 좋아지고 소통력이 성장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동력, 긍정 에너지가 생긴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어쩌면 일상 속에 널려 있다. 우리 눈만 밝아지면 되는 것이다. 그림들은 위대한 명화도 좋지만, 오래전 옛 그림부터 근대화, 현대의 컨템퍼러리 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접해봐야 한다. 다행히 수많은 그림들과 이야기를 알고 있다. 물론 그림에 대한 정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내가 어떻게 느꼈는가가 바로 예술의 절대 가치이므로.

 

놀랍게도 그림 한 점으로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 경험과 정성을 이 수업에 담는다.

사실 그림으로 글을 쓰는 수업의 형식을 띄지만 그림에게 말 걸기이다. 그림으로 참나 만나기이다. 그림이랑 함께 이야기하기다. 그림 속에서 나도 만나고 엄마도 만나고 친구도 만난다. 아이들이 작은 감흥 한 개도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작은 손으로 꼭 붙잡기를 바란다. 삶의 위대한 생각들이 거기에 다 들어있다.

 

글 / 임지영,  <예술감성 글쓰기> 모임 운영

 


 

<봄 말고 그림> 서문

 

말하고 보니 거창하고 멋있는 예술 일기

 

예술 일기를 쓴다. , 말하고 보니 거창하고 멋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짧거나 조금 긴 감상문 정도다. 모티프는 모든 문화 예술적 활동이지만, 주제도 내 멋대로 정하고 형식도 내 마음대로 파괴한다.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동기로 순전한 이기심과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과 정치성을 꼽았는데 나는 순전한 재미가 무조건 첫째다.

 

예술을 대함에 있어 무엇을 보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느끼는가. 나는 이를테면 감상 강박증 환자였다. 책을 보면 단 몇 줄이라도 독후감을 썼고, 영화를 보면 내 관점대로 리뷰를 썼다. 그림을 보면 마음이 끌렸던 작품의 사진을 찍고 감상평을 반드시 썼다. 두세 줄 단상이거나 종이 몇 장까지 쓰기도 했고, 어떤 날은 연필로 쓱쓱 스케치도 했다.

 

이런 예술 일기는 훗날의 근사한 계획을 도모한 것이 전혀 아닌 순도 100퍼센트의 순전한 재미였고 일종의 놀이였다. 이런 습관이 생기자 느낌의 범주는 점점 확장됐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공공 미술들, 건물들 앞의 조형물이나 로비의 작품들, 카페 또는 레스토랑에 걸린 작품까지도 유심히 들여다봤다. 가만히 보면 어느 것 하나 어여쁘지 않은 것은 없었다. 사실 골똘히 들여다보는 일은 그 자체로 유의미해지는 일이다. 잠시 그 앞에 멈췄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특별한 무엇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예술적 인간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적 인간은 체질이 변한다. 일단 느끼기 쉬워진다. 말하고 보니 좀 괴상망측하지만, 말 그대로 감성이 풍부해지고 느낌도 풍성해진다. 매일 지나다니는 건물 앞 모자 석상을 보고도 엄마 생각에 전화기를 든다. 단골 식당 벽에 걸린 모네의 수련액자를 보고도 눈이 멀어 쇠잔해가는 노화가를 떠올리며 애틋해진다. 늘 똑같은 일상이지만, 예술적 인간이 되고 나면 눈이 밝아진다. 그래서 자꾸 새로운 발견을 한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느낀다.

 

궁극적으로 그 느낌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예술을 매개로 느낀 감정들은 심장 한쪽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것은 몹시 선하고 따뜻한 에너지가 된다. 우리는 예술을 대할 때 일단은 좋고 아름다운 것을 느끼려는 준비가 돼 있다. 마음이 한껏 순해져 있다. 그렇게 좋은 것을 느끼려는 습관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꾼다.

 

내 아름다운 면을 먼저 보는 사람을 싫어할 리 없다. 예술적 삶, 그것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심코 지나다니는 모자 석상의 재발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