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글쓰기를 마치며 (박**)
1년 내내 글쓰기를 안했던 적도 있는 것 같은데 글쓰기는 내 안에 해결해야 할, 해소해야 할 영역같은 부분이였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때도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었고, 언젠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글이 내 직업이 되지 않더라도 글쓰기를 통해 내 마음이 가벼워지며 나를 살아숨쉬게 한다고. 나를 거리낌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글쓰기를 숭례문학당을 통해 쓰게 됐다. 나름의 공개된 장소에 글을 쓰는 행위는 처음 해본다. 항상 내 노트북에만 저장하던 글을 다른 사람들이 볼수 있는 공간에 올리게 되다니.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경험도 거의 없고, 만약 보여준다해도 몇번의 검열과 퇴고를 거쳐야 한다 생각했는데, 그날그날 써서 올리기는 것도 매일 하기 어려워 퇴고할 시간이 없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어떤 날은 피곤해서, 어떤 날은 잠을 자야해서, 어떤 날은 그 시간에 드라마를 봐야해서. 그러다 글을 쓸수 있는 나름의 긴 시간이 주어지면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베이글을 다 먹고, 인터넷 기사를 조금 보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러다가 댓글을 달고, 긴 사전 행위를 하다 부랴부랴 몇개를 연달아 써서 올렸다. 퇴고 없이, 검열없이.
의도적으로 검열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 검열을 못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올리고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꽤 가벼웠다. 글을 쓴 날은 알게 모르게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육아가 덜 힘들었다. 그만큼 내 시간을 가졌고, 내 마음을 들여다볼수 있었고, 뭔가 해묵은 것들을 해소한 느낌이였다.
깊게 내 마음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그저 겉핥기에 불과할지라도, 그냥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정돈된 느낌. 더 깊게 들어가도 되고 안 들어가도 되고, 그리고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시 한번 써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 육아에 대해 좀더 써보고 싶기도하고, 육아가 왜 힘든지 다방면으로 생각해 보고 싶기도하고, 그간 내가 갈등을 빚었던 관계에 대해 아주 오래전 일이라도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언젠가는 써보고 싶다. 그런데 매일의 글쓰기를 하다보니 굳이 그런 부분을 당장 쓰지 않아도 마음이 덜 불편했다. 언젠가 쓰면 되니까.
내일도 글쓰기를 하겠지만, 어느새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생각에 읽어줄 사람이 없는 내일은 무슨 재미로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늘상 혼자 썼던 글쓰기인데 말이다. 원래의 나는 갈고 닦은 글만을 언젠가 브런치 같은 공간에 짜잔하고 올려서 최소한의 비판을 받고, 맞춤법도 확인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면 최대한 그런 부분을 해명하는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만약에 정말 글을 쓰게 된다면, 나를 덜 다치게 하고, 내 주변 사람을 덜 노출하면서 짜잔하고 세상을 향해 글을 발표(노출)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언젠가는 오지 않을것 같다.
이번 글쓰기를 통해서 세상에 짜잔하는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쓰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내가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며 그로 인해 내 감정을 해소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인터넷 브런치 보다 무수히 많은 실력자들이 7기 글쓰기 공간에 있음을, 나와 같은 육아를 하는 분들이 글쓰기를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 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솔직한 글, 뛰어난 글, 내공이 느껴지는 글 등 많은 매력적인 글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말 내일부터는 어디에 글을 써야 할까. 물론 예전처럼 당연히 내 노트북에 저장하며 써야겠지만, 마감이 없는 글쓰기를 이제는 할수 없게 되지 않을까 엄살 섞인 걱정이 된다. 글감을 모은다는 핑계로 그저 내 생각을 무수히 나열하는 글쓰기를 했었는데, 내 노트북에 저장된 과거의 글들이 그저 잠들어 다듬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는 꺼내어 다듬어 세상에 빛을 보게 해주고 싶은데, 결국 그러려면 글감을 모으는 글쓰기를 할 시간 뿐만 아니라 과거 글을 다듬는 시간까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려면 더 긴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글감을 모으는 글쓰기를 먼저 해야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 있다. 뭐가 됐든 쓴 다음에 다시 과거의 글들을 들춰보고 덧붙이거나 다시 당시의 감정을 표현해보는 글쓰기를 하면 좋을것 같다는 방법론적인 생각이 떠올랐고, 나에게 글감을 모으는 글쓰기만 한다는 단점도 알게 됐다. 언젠가 에너지가 더 많고, 체력이 더 좋아지는 날. 내 시간이 많아지는 날, 그런날에 글쓰기를 더 하고 싶다. 큰 책상에서 이것저것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보고 그런 여유로운 시간이 많은 날이 사실 언제 주어질지는 모르겠다.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굳이 시간을 내어 체력을 소진하면서 글을 쓸 정도의 의지가 없다는 사실도 명확히 알았다. 나는 딱 그정도의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서 회사를 충실히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부분은 나에게 정말 큰 수확이다.
육아가 끝날 즈음에는 회사를 복직하게 될테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시기가 오면 지금보다 더 시간이 안나겠지만, 여유롭게 책 문장을 음미하고, 눈이 멈추는 곳에서 노트북을 켜고 생각을 마구 써내려가는 그런 날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앞으로의 나날동안 그저 글감을 모으는 글쓰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이런 글쓰기는 내가 하는 유일한 생산적인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산적이기보다는 그저 시간을 때우는 일이니까. 이부분은 아이에게 미안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유일한 숨쉬는 시간이랄까.
30일 글쓰기를 마치며 (설**)
시간이 갈수록 게을러지는 것은 불변의 진리인 듯한데. 이번 30일 글쓰기는 그 게으름에 대한 변명거리가 잔뜩 있었다. 그래서 그 핑계에 기대어 긴장이 많이 풀렸었다. 끝이 다가오니 문득 아쉬워져서 피곤하고 시간이 부족해도 꾸역꾸역 글을 써봤다. 쓰다가 잠결에 글을 올리고 자서, 다음날 일어나 내가 무슨 글을 썼었는지 잘 생각이 안났던 적도 있었다. 좀 더 정성을 들여 예쁜 글을 쓰고 싶었었는데, 노트북을 열고 제대로 쓴 글이 몇개 되지도 않는다. 지금도 핸드폰 메모장에서 마지막 글을 작성하고 있다.
매일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매일 무엇을 쓸지, 주제가 정해진 경우에도.그에 대해 무엇을 쓸지 생각하고, 그것을 써나가는게 쉽지가 않았다. 위에도 쓴 표현이지만, 언젠가 읽은 책에서 작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꾸역꾸역 글을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매일은 아니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겨우 이틀에 한 번 꼴이지만, 꾸역꾸역 한달간 글을 써봤다. 같은 일상, 같은 장소에만 머무는 나날이기에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로 인해 시간이 부족했고, 쓰고 싶다라는 의욕도 처음보다 점점 옅어졌다.
그래도 게시판을 열면 다양한 분들이 그날그날의 글을 올려주셔서 읽으며 힘이 되었다. 역시 혼자였다면 절대 이만큼도 못썼을 것이다. 아니, 게으른 내 성격상 아예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30일간 늘 응원받으며 글을 쓸 수 있어 좋았다. 다음에는 좀 더 깊이있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혼자 다짐해본다.
함께한 선생님들, 코치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들 건강 조심하세요!
30일 글쓰기를 마무리하며 (한**)
30일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목적은 매일 변하는 내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30일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시작할 때쯤 담갔던 이화주는 오늘 막걸리로 걸러져 주문자에게 배송되었다. 또 이직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고 다음 주에 나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 달 전과 똑같이 백수지만 글로 기록하니 한 달 동안 달라진 모습이 눈에 보여 내가 그래도 무언가 하고 있단 생각에 조금 안심했다.
처음엔 100일 글쓰기를 두 번이나 했기 때문에 30일 글쓰기는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 다 50일은 채웠으니 30일은 못 채우겠나 하는 자만이 있었다. 그러나 왜 쉽지 않다고 했는지 매일 보는 주제를 볼 때마다 느꼈다. 어떤 날엔 턱 막혀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기도 했고 어떤 날엔 친구들과 이런 주제로는 뭘 쓰면 좋을까 머리를 싸매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고민한 덕분에 생각과 표현의 폭이 좀 넓어진 듯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몸이 아파져 오래 앉지도 생각하지도 못해 갈수록 글을 못 쓰는 날이 늘었다는 거다. 몸만 좋았으면 30일을 다 채울 수 있었는데 그 점은 조금 아쉽다.
쓰는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글이라도 누군가가 읽고 반응을 해주는 순간 내 글을 사랑하게 된다. 좋은 코치님과 선생님들 덕분에 내 글에 애정이 생겼다. 때로는 응원, 때로는 칭찬을 해줬던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도 애정 어린 댓글로 반응을 보이고 싶었는데 늘 새벽에 글쓰기 바빠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타인의 인생을 간접 체험할 소중한 기회여서 좋았다. 같은 주제로 이리 다르게 생각할 수 있구나 싶어 재밌었다.
30일 도전은 아쉽게 끝이 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그땐 조금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바라건대 바라지 않는 삶 (장**)
글을 쓴다. 매일 쓴다. 마치 내 시간을 내가 가져다 활용하는 기분이 든다. 쓰다 보니 습관처럼 쓰게 된다. 억지로 쓸 때도 있었다. 가끔은 너무 잘 써지지 않아 지난 글들을 정리해서 올리기도 했다. 새벽마다 나의 글과 만나는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도 나는 모른다. 앞으로도 대단한 목표와 목적으로 세워 인생을 살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삶의 방향이나 가치관, 지향점에 대한 고민을 할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목적의식이라는 틀 안의 나를 소비했다. 어떠한 결과물을 생산하는 가공공장처럼 나를 가동했다. 그런데 이제 좀 지쳤고, 글을 쓰면서 달래 보는 중이다.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열심히 사는 친구가 있다. 그녀가 최근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신청했는데 아쉽게도 탈락됐다고 한다. 요 며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닥을 쳤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결혼 후에도 한시도 쉬지 않고 뭔가를 해왔다. 일도 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고, 곧 한국어 교원자격증도 나올 예정이다. 열심히 뭔가를 해왔지만, 뭔가 이뤄 놓은 게 없다는 허탈감이 몰려왔다고 한다. 사실 그녀는 겉으로 보면 실패가 적은 인생을 살았다. 대입도 힘들지 않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이뤄놓은 성과도 있었고, 시험 보면 합격도 잘 되는 공부가 체질인 친구였다. 반면 나는 실패가 잦았다. 문턱에 자주 걸려 넘어졌다. 그때 깨달은 건 내가 간절히 원하면 이뤄지지 않는다. 정말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친해지지 못했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 간절히 원하고 바랬지만, 어쩌면 입으로만 바라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다 이유가 아닌 것 같다. 인생이 노력만으로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게 아니니까. 오히려 결과에 운운하지 않을 때 결과적으로 더 좋을 성과를 얻는 경우가 더 많다.
뭔가가 연연하는 삶을 버리고, 하던 대로 조금씩 천천히 전진하는 것 말고는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대비는 없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내가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던 발자취들이 모여 만들어낸 어떤 시너지 효과 같은 것이다. 지금 나는 묵묵히 쓰는 일 말고는 할 게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일들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그래서 지난 한 달간의 시간 동안 나는 잘 놀았다고 말해본다. 쓰고 싶던 글들을 마구마구 써내려갔던 시간들. 다시는 이런 시간이 또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내 글을 검열하게 됐으니까. 자유롭게 써내려 간 글들과 그 시간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매일 글쓰기. 새벽마다 고심했던 그 시간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 앞으로도 숨쉬는 자연스럽게 글을 써지는 날이 지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