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카페에서 어린이 글쓰기를 운영한 지 10달이 넘었다. 20년 1월 2일, 12명으로 시작한 1기는 10월 19일에 시작하는 8기에 이르러 90명이 등록했다. 아이들이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서 웃으면서 뛰어오는 것만 같다.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글쓰기를 아이들이 즐기는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기는 걸까? 신통방통한 일인데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엄마의 강권으로 끌려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글쓰기를 하면 게임시간을 늘려주겠다는 협상에 넘어가 온 경우가 제일 많았다. 학부모들은 갖고 싶은 물건을 사주거나 여행을 떠난다는 약속으로 하기 싫다고 버티는 아이를 달랬다. 나중에 글쓰기를 재미있다고 느끼자, 아이들은 처음에 억지로 해서 속상했던 마음, 왜 자기랑 상의도 안 하고 등록했냐고 화를 내거나 지겨운 독후감 같은 걸 쓰라고 하면 어쩌나 두려워했던 사연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카페에 온 친구들을 독려했다. 이거는 공부가 아니라 노는 거라고 한다. 맞다. 아이들에게 글쓰기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그 마음을 알아챘다.
어린이 글쓰기 카페 첫날은 자기소개를 한다. 긴장된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온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걸 이야기하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초등 3학년 아이는 맞춤법을 틀리면 화를 내는 엄마를 생각하면 글쓰기가 어렵게만 느껴진다고 썼다. 혼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그 글 속에 아이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져 카페에서 글을 고치라고 하지 않겠다는 초기의 결심을 다졌다.
어린이 글쓰기를 어떻게 운영할까 정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맞춤법처럼 틀린 부분을 이야기하거나 이렇게 저렇게 고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말을 참자.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아이들의 작은 손가락이 망설여질 게 뻔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큰 벽처럼 막고 마음을 움츠러들게 할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걸 운영자의 제일 중요한 임무로 정했다. 아이들은 서로의 글을 보면서 스스로 배울 수 있었다. 간섭하지 말고 그 성장을 응원하고 지켜볼 뿐이다.
예상한 대로 아이들은 달라졌다. 매일 다섯 줄 쓰기 미션인데 고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배워갔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잘 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 생각이 무한 영역으로 뻗어나갔다. 글의 밀도가 달라지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썼다. 분량을 점점 늘려 몇 페이지씩 쓰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한 아이는 다섯 기수 정도가 지나자 한 줄씩 문장을 쓰던 글을 문단으로 나눠쓰기로 바꾸었다. 처음 시도한 날 그 아이는 문단 쓰기의 좋은 점을 기록했다. 어떤 제목을 달면 시선을 끄는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생각을 표현하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둘째,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든 다 할 자유를 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분명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서 지내고 있을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 나처럼 부모의 권위에 눌리고, 해야 할 공부에 시달리고, 슬픈 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어려워하고 있을 게 뻔했다. 아이들에게 조언을 하지 않고 글쓰기를 하면서 감정을 풀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슬기로운 판단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운영자가 가만히 있자 아이들은 화내는 엄마를 고치고 싶다고 말하고, 언니나 동생에 대한 미움을 끝없이 이야기하고, 게임을 못 하게 하는 부모님에 대해 세찬 분노를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엄마에게 혼나서 눈물을 훔치며 복수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한다. 마음이 꼭꼭 닫혀서 삐걱거리고 있고 조각조각난 자기 인생을 수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기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들고 와서 들려준다.
아이들의 심각한 글을 읽으면서 며칠 잠을 못 잔 적도 있고,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도 조언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기만 했다. 운영자는 듣고 바라보기만 하자고 매일같이 마음을 다독였다.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은 맞는 이야기다. 아이들의 마음을 얻었나 보다. 필요한 만큼 감정을 쏟아낸 아이들은 행복한 감정을 노래 가사처럼 글로 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글을 통해서 마음 빼기를 하고 있었다. 불안함, 공포, 슬픔, 분노, 짜증이 빠져나가자 그 자리에 웃음, 즐거움, 행복, 자신감이 들어갔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면서 온갖 이야기를 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아이들의 깊은 생각이 담긴 글은 에세이스트, 철학자나 노스님이 해주는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글을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게 운영자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의 재기 발랄한 위트와 상상력에 깜짝 놀란다. 너무 재미있어서 매번 쓰러질 것만 같다. 아이들에게 고치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땅속 깊은 곳에 박힌 보석을 매일 발견하고 있다.
셋째, 공감, 애정, 칭찬을 쏟아붓는다. 여기에 운영자의 역할이 집중될 부분이었다. 아이들이 올린 글마다 뜨거운 관심을 갖고 읽으면서 좋은 점을 찾아 칭찬을 했다. 어떤 글이라도 칭찬하고 싶은 내용이 샘물처럼 솟아 나왔다. 아이들은 두 줄을 써도 그 안에서 좋은 점을 찾아 10줄의 칭찬을 쓸 수 있었다. 칭찬의 대가가 된 것처럼 매일 올라오는 아이들의 글을 보면 댓글 영감이 떠올랐다. 운영자인 나는 오직 글 속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속상했을지 그 마음에 공감하고, 기쁜 소식을 들으면 축하하면서 감정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글감 주제를 두고 정리한 생각과 노력을 감탄하며 칭찬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속도대로 발전하고 있었다. 빠른 아이도 있지만 느린 아이도 많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한 명씩 집중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매일 글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한 노릇이었다. 1기부터 시작한 아이들은 7기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2기, 3기 계속 들어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스스로 알아본다. 지금까지 얼마나 썼는지를 점검하면서 자랑스러워한다. 운영자의 선을 넘어버렸을까. 절제를 해야 하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눈뜨자마자 아이들이 글감을 보고 어떻게 쓸까 궁리하면서 물어보는 글이 있나 확인한다.
‘글감이 어려워요’라고 하면 아주 잘 하고 있으니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었다. 자기 직전까지 아이들의 글을 보고 매번 온 힘을 다해서 격려하며 지냈다. 아이들 글을 읽으면서 사랑에 빠져버렸나 보다. 가슴이 두근거릴 때나 울컥할 때가 많다.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진다는 아이들, 매번 응원해 주어 고맙다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과 정말 평생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난다.
마지막으로 글쓰기 할 때 소통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매일 작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작가로서 본능을 자극받는 경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 글을 진심과 다해서 읽은 이가 남긴 댓글을 보면서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밤 12시가 넘도록 글을 쓰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글쓰기라고 이야기한다. 2시간 넘게 끙끙 거리며 어떤 이야기를 할까 애를 썼다고 알려준다. 글쓰기를 너무 사랑해서 평생 하고 싶고, 글쓰기가 없다면 우울해지고 살지 못할 거라고 한다. 글을 쓸 때는 시간이 멈추는 것 같다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도 있다.
글쓰기 친구들과의 소통도 빠트릴 수 없다. 운영자는 아이들의 글을 꼭 읽을 거라는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므로 최소 1명의 독자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비해 아이들은 서로에게 냉정하다. 재미없는 글은 읽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 고른다. 누군가 자기 글을 잘 썼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자기가 쓴 글마다 조회수과 댓글 수를 기록하고 확인한다. 역시 초기 예상이 맞았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글을 보고 아이디어가 기발하다고 말하고, 베테랑 시인의 글이라며 감탄한다. 어린이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예비 시인들과 작가들이 크는 중이다.
작은 어항에서는 5~8cm, 수족관이나 어항에서는 15~20cm, 강에서는 125cm까지 크는 일본 비단잉어 코이처럼 아이들은 매일 성장하고 있다. 선생님과 평생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한 어떤 아이의 글을 보고, 그러자고 약속했다. 어느 날, 참여하는 아이들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더는 인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강사도 마찬가지로 그 영역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의 힘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혼자만 만나려고 하지 않고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한다면 얼마든지 많은 아이들에게 같은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숭례문학당에 아이들과 글쓰기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지 않은데. 강사도 아이들과 같이 크면 된다.
6기부터 참여한 백소연 선생님, 8기부터 같이하는 허유진 선생님과 함께 90명의 아이들과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했다. 이 모임을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동지의식으로 우리는 연결되었다. 평생을 이어가야 할 소중한 인연! 아이들이 서로에게 배우는 것처럼 강사도 똑같은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서로를 응원하면서 성장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시간이 지나 글쓰기 세계에서 활약할 아이들을 만날 기쁨,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아서 인생이 달라질 아이들을 생각하면 세상에 이보다 더 보람찬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미래로 빨리 달려가서 어른이 된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진다.
글 / 오수민